횡단일지

횡단일지

2003년 일본 종단일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6-21 11:32
조회
1035

4월 10일 목요일 맑음 횡단거리 60㎞ 횡단1일째


가고시마겐의 카이몬조의 나가사키 바나 - 이브스키 - 기이레조 - 가고시마시 - 샤가이 후쿠시(종합복지센타)
회진이와 이종성이사장님과 일본 DPI에서 도와주신 덕분으로 오늘 종단을 잘 시작했다.
가나가와자립센타에서 하룻밤을 잘 보내고 아침 일찍 이사장님과 종단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들은 출발지인 나가사키 바나의 파킹 가든으로 차로 갔는데 가는 도중에 이사장님께서는 우리들을 구경시켜주기 위해서 도중에 경치 좋은 곳에 멈추어서 설명도 해주고 자상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렇게 2시간 반이 걸려서 10 시 30분 경에 도착했는데 일본의 제일 큰 방송인 NHK방송과 KTS방송, KKB방송과 아사히신문과 교도츠신샤, 가고시마신뽀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가고시마의 재일 동포인 거류민단에서도 단장님과 동포 분들이 나와서 맞이해 주셨으며 이브스키시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이세나씨도 나와서 통역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큰 환영을 받으면서 인터뷰를 마치고 11시 10분 경에 출발하게 되었는데 이사장님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같이 횡단해 주셨다. 언론사들은 출발에서부터 5㎞에 이르는 거리를 달려오면서 나를 취재했다.
횡단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 종단이 끌날 때까지 우리로 인해서 뒤에서 오는 차들이 아무런 사고가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좁은 1차선이 나왔는데 큰 트럭들이 지나가고 차들이 많아져서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이사장님이 끝까지 에스코트해 주시고 안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다.
일본은 말 그대로 섬나라여서 그런지 산을 뚫어 길을 만들었기에 터널이 많았고 오늘 국도인데도 터널을 2개나 통과했다
가고시마해를 보면서 바닷바람이 종단하는 나를 맞이해 주었다. 바닷바람이 나의 깃발을 더욱 휘날리게 하는 걸 보니 종단하는 나를 맞이해 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휠체어를 조정하여 오후 4시가 넘어서 위험한 1차선은 끝나고 3차선이 나왔다. 그리하여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는 걸 느꼈다.
가고마시의 전경은 우리 나라의 제주도를 연상케 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나의 이런 생각은 잠시뿐, 나를 착각하게 만들었다. 가고시마켄은 미국의 건물과 거의 비슷하고 자동차를 전시를 해 놨는데 미국을 복사해 놓은 것 같아서 미국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해가 지고 가고시마겐에 도착하자 가고시마의 자립센타의 대표인 하키아이 미유기상이 마중을 나와주었다. 가고시마켄은 우리나라말로 하면 도청인데 밤이 늦었는데도 시민들을 위해서 오픈이 되어 있었고 이사장님은 우리들을 가고시마겐을 구경까지 시켜 주셨다. 가고시마겐의 제일 윗층에 올라갔을 때는 넓은 가고시마시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지금은 샤가이후쿠시센타에서 이사장님과 같이 짐을 풀고 쉬고 있다.
이사장님은 바쁠텐데 우리가 걱정이 되어 내일까지 에스코트를 해주려고 하신다.
이사장님은 내일 나의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서 지금도 여기저기 알아보고 계신다.
오늘 낮에는 야쿠자가 에스코트하는 차량에게 뒷면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고 간다고 시비를 걸기도 했는데 나의 모습을 보고는 격려까지 해주고 가기도 했다.

오늘의 한마디 : 바다 - 우미, 오른쪽 - 미기, 왼쪽 - 히다리 길 - 도로


4월 11일 금요일 날씨 비 횡단 2일째 횡단거리 60㎞


가고시마시 - 이쥬잉조 - 히가사이치키죠 - 그시키노 - 센다이
아침이 되었는지 이사장님이 일어나셔서 준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눈이 떨어지지 않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억지로 겨우 정신을 차려 일어나 보니 어젯밤의 일기예보대로 비가 오려는지 하늘엔 먹구름이 끼어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삼각김밥 하나로 아침을 먹고 출발을 하려고 하니 샤가이 후쿠시센타의 소장님과 직원 분들이 모두 나와서 사진도 찍고 전송을 해 주셨다.
오전에는 유니버시아드홍보를 위해 가고시마대학을 방문했다. 대학본부의 사무국장이 우리를 안내해줬는데 학생부장과 과장을 만났다. 두 분은 방송을 통해서 보았다고 하면서 미리 연락을 주었더라면 총장님이 나와서 맞이했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총장님에게 이 소식을 보고하고 유대회 책자와 뱃지와 리플렛을 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학생들이 수업중인데 수업이 끝나면 학교측에서 대구U대회를 홍보하겠다고 했다.
가고시마대학 홍보를 마치고 나오는데 비가 쏟아졌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라서 학교식당에서 이사장님과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비옷을 입고 비닐봉투로 손발을 싸고 빗속으로 횡단을 시작했다.
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응원해 주었고 길에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도 박수를 치고 응원해 주었다. 미국 횡단 때처럼 사진도 가면서 찍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일본은 다른 점을 느꼈다.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더욱 더 응원을 해 주셨다. 우리 나라를 보면 어르신들이 장애인을 보면 불쌍하다, 안됐다 라고 보는데 일본의 어르신들은 오히려 젊은 사람들보다도 더 장애인을 보는 시각이 따뜻하기만 했다. 비가 오는데도 비를 맞으면서 뛰어 오셔서 주머니돈을 털어 힘내라는 글을 쓴 봉투에 넣어서 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주시는 돈은 그 어떤 돈보다도 더 큰 후원금이고 나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다.
오늘도 비를 맞으며 가고 있는데 터널이 하나 나왔다. 차들은 많이 오는데 어떻게 또 통과해야되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통과하는데 어제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얼마나 긴지 뒤에 큰 트럭들은 밀려가 있고 깜깜하고 가도가도 입구는 나오지도 않고 전동휠체어 속도가 제일 느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내면서 겨우 출구로 나왔다.
뒤이어 싸이렌이 울리면서 경찰차, 소방차들이 난리가 난 듯이 요란하게 내 뒤에서 뒤따라나오는 것을 보고 내 뒤의 차들이 사고가 났는 줄 알고 놀랬다. 물론 나를 에스코트하는 차들도 먼저 나와서 출구 쪽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터널 안에서 사고가 났는 줄 알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다른 곳에 사고가 나서 소방차, 경찰차가 출동한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사고가 난 곳도 인명피해가 없기를 빌었다.
빗속을 계속 달리는데 바람까지 앞에서 불어오니까 비바람이 눈에 들어와서 눈은 뜰 수 없고 계속 가야만 되고 입에 무는 조정기는 조금만 잘못해도 빗길이라서 미끄러지는데 어떻게 이 비바람하고 싸우면서 가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수도 매일 매일 깨끗하게 하는 편인데 오늘은 하루종일 빗물이 나의 얼굴을 세수해 주었다. 이러다가 내 얼굴이 우동처럼 부풀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힘든 나를 내 스스로 위로했다.
하루종일 빗속을 운전하여 7시가 다 되어서야 숙소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도착한 이 곳 센다이는 마땅한 숙소가 없어서 이사장님이 이곳 저곳 모텔을 알아봐주신 덕분으로 여기 모텔에 싸게 들어오게 되었다.
이사장님은 어제 후쿠오카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내가 걱정이 되어 하루종일 빗속에서 운전을 하시면서 내 뒤에서 에스코트해 주셨고 그래도 걱정이 되어 밤 10시가 넘도록 종단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주시고 챙겨주시고 걱정하셨다. 그리하여 일본에 도착한 8일부터 오늘 11일까지 4일 동안 모든 횡단준비를 도와주신 것이다. 이사장님과 직원들을 전송했는데 비는 더 많이 쏟아져서 걱정이 되었다.
피곤하고 허리가 너무나 아파서 이제는 쉬어야겠다. 자자

오늘의 한마디 : 기름 - 가솔린 경유 - 게유, 보일러기름 - 토유
어디입니까 - 도꼬데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