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일지

횡단일지

2000년 미대륙 횡단일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6-21 11:31
조회
1133

9. 15 금, 화씨102도


주행거리 52 mile , 거친 도시들은 Palm Spring - Yucca Vally - Twenty Nine Palm이다.
Twenty Nine Palm에서 휴식을 하면서 오늘 하루를 떠올려 본다.
어제 숙소를 제공해주신 Palm온천의 좋으신 강필수사장님과 사진촬영을 마친 후 어제 Freeway에서 62Highway로 바뀌는 곳으로 다시 차로 돌아가서 횡단을 출발했다.
오늘도 많이 힘든 하루였다.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지 눈앞이 어지럽고 힘도 없는데 산을 하나 넘었는데 길이 2차선이고 계곡을 길로 만들어서 그런지 길이 가파르고 옆으로 기울어져서 전동을 조정하기가 힘이 들었다.
전동휠체어마저도 2대 모두가 그 산을 넘고 나니 이상이 생겼다.
Yucca Vally에 들어오니 도시가 조용하고 경치도 좋았다.
한 옆에 잔디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Yucca Vally 신문사의 기자가 사진도 찍고 취재도 해 갔다.
도중에 로마린다의 물리치료교수가 차타고 지나가다가 나의 휠체어 타고 가는 모습을 보고 와서 같이 기념사진도 찍었다.
횡단중에 La MBC에서 연락이 와서 월요일에 취재를 하러 오고 콜로라도주에 도착했을 적에 촬영을 오기로 했다.
7시가 넘어서 Twenty Nine Palm에 들어와서 숙소를 잡기 위해 다녀보니 조용한 우리 나라 시골을 연상케했다.
내일은 어떻게 해서라도 먹는 음식을 먹어 볼 수 있도록 해야되겠다.



9. 16 토 107도


이동거리 51 mile, 하루종일 사막을 달림
Twenty Nine Palm에서 Highway 62와 177번이 만나는 곳까지 횡단함
오늘도 굉장히 힘든 하루였다.
어제 좋으신 김영각사장님과 좋은 인연이 되어 지금 편안하게 호텔에서 쉬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장님이 어제 밤에 가스스테이션 옆의 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게 해 주시고 우리팀들의 횡단하는 목적을 아시고 사막이라서 가도 인가가 없으니 오늘 횡단을 마치고 차로 다시 돌아오라고 하시면서 이곳 교민들이 몇 분 안되지만 우리를 초대하고 싶으니 꼭 오라고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7시 30분이 넘도록 사막을 횡단하였으나 집 한 채를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횡단을 마친 곳을 표시해 두고 차로 Twenty Nine Palm으로 돌아왔다.
사장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오지 않자 손수 차를 운전하여 마중까지도 나와주셨다.
안호준목사님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는데 그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유미라장로님, 안호준목사님과 사모님, 김영각사장님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일 라디오방송인터뷰와 교민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생각을 해 보니 우리 교민들을 한 번 만나뵙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내일 하루 횡단을 쉬고 만남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
또 사장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서 숙소를 마련해 놓으신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는 힘이 들었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고 마음도 편안하고 오늘 아침 사장님과 같이 일하시는 미스터 윤 아저씨가 콩나물국을 끊여 아침식사를 마련해 주셨다.
사장님께서 차에 가스를 만당 넣어 주셨는데 출발하는데 온 몸이 아프고 입술마저도 불어 터지고 공기고 하여 많이 괴로웠다.
오후 1시가 넘도록 조정을 하니까 그때부터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사막이 시작되었다. 사막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오전에는 드문드문 집도 있고 하여 시골의 넓은 들판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뜨거운 바람이 내 몸을 휘휘 감고 깃발을 세차게 휘날리게 하였다.
사방의 뜨거운 태양은 내 머리위를 비추었고 터진 입술을 메마르게 하여 피를 흘리게 하였다.
옆에서 자전거로 따라오는 이선생이 더 힘들게 보여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12시 30분에 날씨가 너무 더워서 본부장님은 내가 염려가 되어 휴게소에서 쉬게 하였다.
휴게소에서 쉬는데 미국사람들이 우리 횡단하는 것을 알고 음료수도 주고 가다가 우유라도 사먹으라면 돈을 주기도 하였다.
3시에 출발했는데 좀 쉬어서 그런지 몸이 많이 가벼웠다.
오후에는 진짜 가도 가도 집 한 채를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 때에야 정말로 사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식 한 대씩 지나가는 차와 우리 횡단팀 뿐이었다.



9. 17 일


편안한 곳에서 휴식을 취해서 그런지 오늘 아침은 몸이 상쾌하다.
서둘러 준비해서 교민들이 모이는 목사님의 교회에 우리는 참석했다.
예배도 드리고 교민들과 인사도 나누교 점심식사도 했는데 친형제보다도 더 우애있고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또한 우리들을 위해서 큰 돈을 모금해 주셨다.
이 돈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큰 액수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분들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에이 끊없는 사막을 계속 횡단하기 위해 그만 쉬어야되겠다.


9. 18 월 약 105도


이동거리 59 mile, 이동장소 Highway 62와 177번이 만나는 곳에서 Bidal Juction까지
인심좋은 Twenty Nine Palm을 뒤로 하고 새벽 5시 40분에 출발하였다.
16일날 횡단마친 곳까지 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아침인사를 했다.
바로 그것은 사막을 뜨겁게 달구는 아침해였다.
나도 답례로 인사를 했다. 우리 오늘 하루종일 사이좋게 지내자고 하면서...
그래서 뜨거운 태양과 같이 횡단을 시작을 하였다.
하루종일 끊없는 사막의 길을 가도 모래와 사막의 풀들과 조각같은 산만 나타났다.
가끔씩 자나가는 차동차를 타고 가는 분들이 격려도 해 주시고 나의 조정하는 모습을 사진에 닮기도 했다.
낮에는 순찰하는 미국경찰과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어머니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더니 이 아들이 걱정이 되어 목소리가 목이 메인 소리였다.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이 자식의 아팠는 것도 알고 계셨다.
어머님들은 자식들에 있어서 도술의 능력이 있으신가 보다.
이 먼 곳에 있는 자식이 아프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어머니께 죄송스럽기만 하다.
행운의 여신이 우리 횡단팀을 계속 도와주시는 것 같다.
가스 스테이션의 Mini Mart에서 오늘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전기와 물을 위해 주차할 수 있게 해 주길 부탁드렸는데 여기 사장님께서 흔쾌히 승낙을 해 주시고 사장님께서 우리가 자동차안에서 잔다는 것을 아시고 처음 본 외국인들에게 아무런 주저없이 자신이 쓰던 방을 내어 주고 아는 친구집에 자러 가셨다.
이렇게 좋으신 분들에게 어떻게 이 고마움을 보답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이만 자야겠다.



9. 19 화


이동거리 34 mile 이동장소 Bidal Juction에서 Needles 까지
오늘도 Mr. 잭 이라는 좋으신 분을 만나서 저녁식사도 대접받고 전기와 물을 얻어 안전하게 오늘밤도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힘든 하루였다.
어제 95번 Highway을 지나면서 1차선이고 사막의 바람이 유난히도 세게 불고 바람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불어와 입에 물고 있는 조정기가 왼쪽으로 자꾸 꺽여 옆에 지나가는 큰 트럭에 부딪힐 뻔 하였고 대형트럭 이 지나가면서 바람과 조정기를 같이 왼쪽으로 끌어 당겨 휠체어가 왼쪽으로 돌아가고 해서 계속 조정기를 이빨로 꽉 물고 조정해서 그런지 오늘은 이빨이 많이 아파서 휠체어를 조정하는데 많은 힘이 들었다.
오늘도 사막의 바람과 트럭이 지나가면서 일으키는 바람이 나를 애를 먹였다.
사막의 바람은 나의 모자가 그렇게 좋은지 나의 모자를 계속 벗겨가려고 했다.
그리고 미국의 트럭운전사들은 정말로 많은 배려를 해 주었다.
1차선인데도 불구하고 잘 기다려주고 커랙션도 울리지 않았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국토종단할 적에는 휠체어가 지나가는데도 커랙션을 울리면서 나를 무시하고 바로 옆으로 총알같이 지나가고 했다.
이것을 보고 미국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좋다
마침내 Needles에 도착하니 로키산맥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콜로라도 강이 있었다.
우리 횡단팀은 모래사막만 보다가 멋진 콜로라도 강을 보게 되어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매우 반가웠다.
숙소를 구하다가 미스터 잭씨 집에서 쉬어가게 되었는데 그 집이 바로 강앞에서 있어서 우리가 수영해도 되는지를 묻자 고무튜드와 수영복까지도 빌려 주셨다.
그래서 우리팀은 물놀이를 했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까지 와서 고무튜브를 타고 수영까지 했으며 처음으로 온 몸을 모래 속에 파묻어 모래 찜질까지 했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 동안 힘들고 피로했는 것도 한 순간에 풀리는 것 같았다.
나는 골반도 아직까지 낫지 않았고 위장병 때문에 먹는 것도 제대로 먹을 수 없으며 뜨거운 사막에서 하루 종일 휠체어를 조정해서 그런는지 입술이 불어 터지고 그 입술에 강렬한 태양빛에 화상까지 입어 고통의 연속이다.
내일도 휠체어를 조정하면서 입에서 드라큐라처럼 피를 흘리면서 조정을 할 것을 생각하니 할 말이 없다.


9. 19 화


본부장님이 총영사관에 협조요청하기 위해 이선생과 함께 이광준내무관을 만나러 가셨다.
다녀온 후 내일 운전면허시험 때문에 본부장님과 이선생은 하루종일 운전연습을 하였다.
노요셉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Indefendant Living Center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와서
내일 오후 2시에 미팅을 만들었으니 참석하면 된다고 하셨다.



9. 20 수 105도


이동거리 43 mile 지나온 도시 needles - oatman - kingman 근처
Truck 가스 스테이션에서 총총히 박힌 별빛 하늘 아래 누워서 오늘 하루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주 위험한 하루였던 것 같다.
미스터 잭씨와 기념촬영도 하고 선물도 받고 전송을 받으면서 길을 떠났다.
그런데 출발했는지 15분도 지나지 않아서 2차선 갓길로 가고 있는데 지나가는 차가 순식간에 나의 전동휠체어를 치고 갔다.
나는 휠체어를 탄 채로 도로 옆의 흙길로 5m만큼이나 튕겨 나갔다.
행운의 여신이 나를 도우셨는지 나는 왼손만 가볍게 상처를 입고 전동휠체어만 부서졌다.
앞에 먼저 가 있던 본부장님도 오시고 경찰과 미스터 잭씨도 왔다.
지나가다가 부딪힌 차도 일부러 부딪힌 것이 아니고 지나가다가 그런 것이라서 전동만 수리해 달라고 나는 말했다.
가해자 청년은 코카콜라 직원이었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전동휠체어가 대충 움직일 수 있도록 수리를 해 주었다.
사고난 직후고 몸도 많이 놀래어서 점심 먹고 쉬다가 1시 30분에 출발했다.
3550feet 높이의 산을 하나 넘다가 보니 산속의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oatman이라는 마을이었다.
그 마을은 수십년전에 미국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와 말이 길 거리에ㅐ도 띄어 다니고 집과 가게가 한 폭의 그림같았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아주 순박하게 보였다.
나는 이 마을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에 도취가 되어 오전의 교통사고의 고통은 잊을 수가 있었다.
오전에 교통사고로 인해 허리통증이 너무 심해 내일 횡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